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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열아동 사망, 뇌수막염 초기진단 못했어도 손배책임無"

[the L] 법원 "'예방주사 접종-열' 인과관계 가능성..열 증상만으로 뇌수막염 진단 어려워"


"고열아동 사망, 뇌수막염 초기진단 못했어도 손배책임無"/이지혜 디자이너



지난해 1월 A씨 부부는 생후 7개월 된 소중한 딸을 잃었다. 불행은 갑자기 찾아왔다. 전날 예방접종을 했던 아이의 체온이 다음 날인 4일 새벽부터 40~41℃에 오르자 곧바로 B병원 응급실로 데려갔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의료진은 "원인이 불분명한 열"이라고만 설명했다. 해열제와 수액을 맞자 아이의 체온이 38℃로 떨어졌다. "해열제로 열 조절이 안 되거나 새로운 증상이 있을 경우 재차 응급실로 오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다.

"예방접종을 한 날에는 열이 나는 경우가 있는데 곧 정상체온으로 돌아오기도 해요. 고열이 나면 해열제를 줬다가 열이 내리는지 지켜보세요." 소아과 의사에게 종종 들었던 설명이라서 곧 아이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도 했다.

하지만 집에서 해열제를 계속 먹였는데도 아이의 체온은 38~40℃ 안팎에서 머물렀다. A씨 부부는 다음 날 C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은 체온을 낮추기 위해 미온수 마사지를 하고 독감 검사, 혈액검사 및 소변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 '패혈증 및 뇌수막염, 백혈병'으로 진단한 의료진이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A씨 부부는 또 다른 병원으로 갔다. '뇌수막염' 의심이 되는 진단을 받고 뇌 초음파 및 뇌 MRI 검사를 받는 동안 아이의 상태는 나빠졌다.

입원기간 동안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며 버티던 아이는 고열이 난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이의 사인은 '뇌수막염에 따른 패혈증'. 처음으로 찾아갔던 병원에서는 왜 아이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A씨 부부는 "아이가 응급실에 왔을 때 40.1℃의 열이 있었다면 최소한 혈액검사나 소변검사를 해야 했는데, 발열의 원인이 되는 질환을 찾기 위한 어떤 검사도 하지 않고 퇴원시켰다"며 B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들은 "지속적인 고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나 합병증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해 조기에 뇌수막염에 대한 치료 방법 등을 선택하고 결정할 기회를 박탈당했다"며 "의료진의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뇌수막염이란 뇌와 척수를 포함한 중추신경을 감싸고 있는 뇌척수막에 염증이 생긴 것을 말한다. 뇌수막염으로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으로는 소아의 경우, 신경계 손상으로 인한 뇌 내 출혈, 뇌성 마비 등 장애가 있다. 패혈증은 원인균을 알아내기 위해 환자의 혈액을 채취해 균을 배양하는 검사가 필요하지만, 3~5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므로 환자의 상태가 위독하다면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에 경험적인 치료를 시행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방접종 후 고열을 앓는 아이를 처음 진찰한 의료진에게 '뇌수막염' 증상을 의심하지 않은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법원은 "의료진이 병명을 진단하지 못했다거나 혈액검사 등을 시행하지 않은 과실이 없다"고 봤다. 창원지방법원 민사합의5부(이유형 부장판사)는 A씨 부부가 B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지난 22일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 부부가 처음 응급실에 왔을 당시 아이는 40.1℃의 발열 외에 뇌수막염의 증상인 경부 강직이 없었고, 호흡음은 깨끗했으며 구토 등의 증상이 없었다"며 "예방접종한 다음날 새벽부터 구토하고 묽은 변을 보면서 축 처지는 모습을 보였더라도 이러한 증상을 의료진에게 알렸다는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발열 증상은 뇌수막염뿐만 아니라 발열을 동반한 다른 질환에서도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뇌수막염을 특별히 의심할 만한 다른 징후가 없었던 상황에서 발열 증상만으로 뇌수막염을 의심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아이가 받은 예방접종과 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당시 아이가 한 예방접종은 DTaP, 폴리올(소아마비 백신), HBV(B형 간염 백신)로, DTaP 백신 접종 후 38.3℃ 이상의 열은 피접종자의 3~5%에서 발생하고, HBV 백신 접종 후 38℃ 이상의 열은 1~6% 발생한다.

재판부는 "예방접종 후의 열은 자연스럽게 없어지거나 해열제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며 "백신 접종 후 발생하는 열과 감염병으로 인한 열은 초기에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예방접종 후 발생하는 이상반응(열)이 이론적으로 가능한 시간에 발생하는 경우 예방주사 접종과 이상 반응 간에 인과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또 "병원을 찾았을 당시 예방접종을 한 후 약 48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고, 예방접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의료진이 발열 증상에 대해 해열제 등만 투여했더라도 진단 및 그 조치에 과실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료진이 A씨 부부를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열 조절이 되는지를 감시할 것과 해열제로 열 조절이 안 되거나 새로운 증상이 있으면 응급실로 내원하고, 뇌수막염이 발생할 경우의 증상을 교육한 점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설명의무 위반 주장에 대해서도 "의사가 현대 의료행위의 수준에 따른 진료를 했는데도 환자의 질환을 진단하지 못한 결과 그 질환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다면 설명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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