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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서 남주자

정치부 기자가 읽어낸 국회의사당 건물의 멜랑콜리아

[따끈따끈 새책]건축 멜랑콜리아…한국 근현대 건축에서 시대적 징후를 읽다


정치부 기자가 읽어낸 국회의사당 건물의 멜랑콜리아
수십년을 한 자리에서 버텨온 아현고가도로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가장 강렬하게 인식된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히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해졌을 때였다.

책 '건축 멜랑콜리아'는 이렇듯 무신경하게 방치된 여러 도시 공간들에 대한 애도의 작업물이다. 신문사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에 몸담아온 저자 이세영은 이 콘크리트 입방체들에 깃든 정치적 맥락과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을 읽어냈다. 그 결과 한국 근현대 건축물에는 공통으로 '멜랑콜리의 정조'가 담겨 있음을 발견했다.

이를테면 박정희 정권은 남산에 '자유센터'를 건립하면서 건축물의 위엄과 숭고미가 강조했다. 지금은 '남영동 인권센터'로 바뀐 '대공분실'의 내부 구조는 고문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공포와 복종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설계됐었다. 두 건축물은 강제된 경외심과 공포를 이용해 통치의 정당성을 획득하고자 했던 독재정권의 부조리를 상징하는 유물이 됐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사당 또한 애초 계획에 없던 돔 지붕이 의원들의 요구로 추가되는 동안, 입법부와 의회민주주의는 군부독재 하에 그 어느 때보다 무력화됐다는 멜랑콜리한 시대상이 배어있다.

그러나 공간은 권력자의 비의(秘義)에 아랑곳없이 실제로 그 공간을 점유하고 이용했던 사람들에 의해 정체성과 의미가 달라진다. 가령 연세대 학생회관은 1968년 건축가와 건축주에 의해 종교적 '신실성'이 구현되는 공간으로 지어졌다. 외벽 전체를 사방연속무늬 형태의 고딕 양식 아치로 둘러싸 조형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권력자들의 의도는 관철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건물이 완성된 시기는 서구의 신좌파 학생운동이 절정에 달한 때였다. 학생회관은 박정희 정권에 맞서는 거점이 됐고 이한열 열사의 '의로운 죽음'으로 이 곳은 '진정성'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라운지'와 각종 소비 공간이 들어서며 '속물성'이 그 자리를 꿰찼다.

이처럼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주변의 건축물과 공간들은 정치사회적 관점과 역사적 맥락, 그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엮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은 곳이 된다. 문득, 일상의 공간을 낯설게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다. 저자는 낯설게 보기가 결국 지금 이 곳을 다시 돌아보고 현재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책은 이름 없는 생활공간, 발전소, 지하도, 도로 등 도시 설비와 인프라에 해당하는 곳들에도 다수 집중했다. 정지된 공간들에 숨어있던 살아 꿈틀대는 이야기들이 잘 채집돼 있다.

◇건축 멜랑콜리아=이세영 지음.반비 펴냄.332쪽/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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